슈링크플레이션, 가격은 그대로인데 봉지가 줄었다

과자를 뜯다가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예전보다 적어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이 아닌 경우가 꽤 있습니다. 가격표는 그대로인데 내용량이 줄어드는 것. 이걸 슈링크플레이션이라고 부릅니다. 줄어든다는 뜻의 shrink와 물가상승을 뜻하는 inflation을 합친 말입니다.

경영·경제 계열을 생각하는 학생에게 이 소재가 좋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숫자가 정의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을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물가에 잡히지 않는 이유

여기서 질문 하나.

가격은 그대로인데 양이 10% 줄었다면, 이건 물가가 오른 걸까요?

상식적으로는 오른 겁니다. 같은 돈으로 더 적게 사니까요.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물가를 재느냐에 따라 이 사건이 통계에 잡히기도 하고 안 잡히기도 합니다.

가격표만 본다면 변화가 없습니다. 물가는 그대로입니다. 반면 단위당 가격, 그러니까 100g당 얼마인지를 본다면 약 11% 오른 것으로 계산됩니다.

같은 사건, 다른 결론입니다.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닙니다. 무엇을 재기로 정했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이게 경제 통계의 성격입니다. 물리량을 재는 게 아니라 정의를 정한 다음 그 정의대로 세는 것입니다. 정의가 바뀌면 답이 바뀝니다. 같은 현상을 두고 기관마다 다른 숫자가 나오는 일은 자연과학에서도 있지만, 경제에서는 그 폭이 훨씬 큽니다.

가격표, 내용량, 100g당 가격 세 가지 기준의 계산 결과 비교

10% 줄면 왜 11% 오르는가

여기서 학생들이 자주 헷갈립니다. 양이 10% 줄었는데 왜 가격이 10%가 아니라 11% 오른 걸로 계산될까요.

직접 해보면 바로 보입니다.

가격내용량100g당 가격
원래1,000원100g1,000원
바뀐 뒤1,000원90g약 1,111원

1,111을 1,000으로 나누면 1.111. 약 11.1% 상승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값입니다.)

분모가 줄었기 때문입니다. 10% 줄어든 90은 100의 90%지만, 100은 90의 111%입니다. 줄어드는 비율과 늘어나는 비율은 대칭이 아닙니다.

이건 공통수학의 비율 계산이면 충분히 다룰 수 있고, 경제나 경제 수학을 선택한 학생이라면 지수와 실질화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숫자는 누가 내는가

경제 소재를 다룰 때 자연과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숫자를 내는 쪽이 그 숫자에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시장 규모를 발표하는 곳이 그 시장에서 돈을 버는 협회일 수 있고, 실적 지표를 고르는 곳이 그 실적으로 평가받는 기업입니다.

그래서 경제 기사를 볼 때는 발표한 주체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합니다. 비난하자는 게 아닙니다. “숨겼다”가 아니라 어떤 정의를 골랐고 그 선택이 숫자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거기까지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입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여는 진로

이 현상 하나에 여러 갈래가 걸려 있습니다.

  • 경제학 — 물가지수 설계, 실질가치 계산. 통계를 만드는 쪽의 관점
  • 경영·마케팅 — 가격 인상 대신 용량 축소를 택하는 의사결정과 소비자 반응
  • 소비자학·법정책 — 내용량 표시 의무 같은 제도 설계
  • 통계·데이터 분석 — 품목별 시계열을 다루는 실무

고등학교 과목으로는 경제, 경제 수학, 금융과 경제생활, 그리고 확률과 통계가 직접 연결됩니다. 어떤 과목을 골라야 할지 정리가 안 된다면 진로에 맞는 선택과목 고르는 법을 함께 보세요.

원자료를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계열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자연과학 탐구에서 학생은 대개 논문에 실린 결과값을 옮겨 계산합니다. 원 데이터를 다시 돌려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경제 통계는 다릅니다.

  • KOSIS 국가통계포털 — 품목별 소비자물가지수 원표
  • 한국은행 ECOS — 물가·금리 시계열
  • e-나라지표 — 부처별 핵심 지표 요약

전부 무료 공개입니다. 학생이 자기가 고른 품목으로 직접 표를 받아 계산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라면을, 누구는 우유를, 누구는 학용품을 고릅니다. 고른 품목이 다르니 나온 표도 다르고 해석도 다릅니다. 같은 관심사라도 네 탐구는 달라야 한다는 말이 데이터 수준에서 실현되는 셈입니다.

정부 사이트는 메뉴가 자주 바뀝니다. 경로가 안 맞으면 지표 이름으로 검색하세요.

이 소재에서 나오는 탐구 거리

고등학생이라면

  • 슈링크플레이션이 물가 통계에 잡히려면 통계의 정의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내가 고른 품목 세 가지의 최근 5년 가격 추이를 받아 명목과 실질을 각각 계산해보기
  •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대신 양을 줄이는 선택을 하는 이유를 소비자 행동으로 설명하기
  • 내용량 표시 의무가 도입되면 누가 무엇을 얻고 잃는가

중학생이라면

  • 집에 있는 과자·세제·음료 다섯 개의 100g당 가격을 계산해 비교하기
  • 같은 제품의 예전 포장과 지금 포장을 찾아 내용량 비교하기
  • 마트에서 단위당 가격 표시를 찾아보고 왜 그런 표시가 있는지 이야기해보기

첫 번째는 우리 동네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관심 분야를 넓혀가는 방법으로도 괜찮습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작은 현상이지만, 여기서 배우는 건 하나입니다. 숫자를 볼 때 어떤 분모 위에서 계산된 값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 경제 기사를 읽는 일도, 경영·경제 계열의 탐구도 결국 여기서 시작합니다.

Ethan

진로·진학 분야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며 상담과 컨설팅 일을 해왔습니다. 모든 글은 2022 개정 교육과정과 계열별 최신 연구를 근거로 씁니다. 아이가 스스로 찾아보고, 스스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